<호련의
빨강 토마토 메일 87. 선택의 주도권>
#1.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살고 있나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것은
스스로 얼마나 결정을 내리고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런 말을
합니다. (물론 호련도)
“아무거나”, “나는 무엇이든지 다
괜찮아”
그 때문인지 식당에는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꼭 모든 것을
자주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스스로가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남의 선택의 결과를 따라하게 됩니다.
특별한 패션 취향이
없는 사람은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 입게 됩니다.
뭐든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원하는 음식을 따라 먹습니다.
꿈이 없는 청년은
남들이 유망하다는 전공, 잘나간다는 직장을 좇게 됩니다.
이번 토마토 메일에서 드리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 토마토 여러분의 삶은 스스로가 선택한 것입니까?”
#2. 선택에는 희생이
따른다
선택은 희생을 동반합니다. 한
가지를 결정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호련은 첫 회사를 그만 두고 쉬기로 결정했을 때, 안정적인 직장생활과 매달 나오는 보수, 짧았지만 마음고생 몸고생하며
쌓은 명성과 경력을 버려야했습니다.
물론 그게 대단한 것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몸 속에 케찹이 흐르는 줄 알았던 어린 호련은 마치 지옥에라도
가는 기분이었답니다.
사표를 쓰기 전 한 달 동안은 ‘회사를 그만두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매일 밤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이것은 두 번째 회사를
다니다가 다시 이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이렇게 회사를 옮겨다니는 나는 메뚜기족은 아닐까”, “옮기고서 예전 회사에 있을 걸 하며 후회하진 않을까” 하는 별별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현재’의
걱정’보다 ‘미래를
향한 두근거림’이 더 컸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설령 나중에 실패하거나 과거를 아쉬워하더라도 스스로가 원한 삶이기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어요.
양손 가득 무언가를 쥐고 있으면 다른 새로운 것은 잡을 수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을 쥐기 위해서는 일단 손에 현재 들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합니다.
혹시 현재의 희생이 두려워서 새로운 기회를 눈 앞에 흘려 보내고 주저하기만 하고 계시진 않나요?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도 성공만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기에
어쩌면 호련도 모든 것을 실패하여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혼자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날이 있을 수도 있겠죠.
아마 춥고 배가 고프고 힘들긴 하겠지만 그때도 자신이 선택한 삶의 결과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몇년 전에도 그렇게 마음
먹었어요.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해보고 정
안되서 모든 것이 실패하고..나중에는 결국 취업조차 다시 할 수 없다면
옷가게 아르바이트생이라도 들어가서 막일이라도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고
의외로 최악이라는게 별거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그동안
저에게도 선택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선택의 주도권을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주었을 때 한결 마음이 편하기도 했거든요.
(그러면 인생을 남탓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행동과 협상의
세계에는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바로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티모시 패리스 <4시간>
고등학생 때까지 품었던 만화가와
작가의 꿈도 부모님의 반대에 포기했고,
같은 반 짝궁이 가기로 한 대학을
따라 갔으며,
취업이 잘된다고 부모님이 권유하셨던
중어중문학과를 갔죠 (친한 친구가 그 학과를 신청하길래 따라 갔습니다).
연애할 때도 늘 남자친구가 알아서
짜온 코스대로 데이트를 하고 예약해온 영화를 보곤 했어요. 그런 삶이 편안하고 좋은 것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선택은 누군가가 대신
해주더라도 그 책임은 자기가 져야해요. 정말 아무도 인생까지 대신 살아주지는 않거든요.
어쩌면 여러분의 선택에 시련이 함께 따라올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제발 시련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빌지 말고,
'시련이 오더라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빌도록 합시다.
위험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리되는
것'뿐이니까요.
호련 드림
<선택된 오늘의
빨강 토마토 뒷이야기>
#1.
같은 반
짝궁이 가기로 한 대학을 따라
갔으며,
취업이
잘된다고 부모님이 권유하셨던 중어중문학과를 갔죠 (친한 친구가 그 학과를 신청하길래 따라
갔습니다).
그 짝궁은 편입해서 다른 대학을 갔고,
중어중문학과와 전혀 관련없는 부서에만 취업을 했으며
같은 학과였던 친한 친구는 다른 과로 전과를 했었죠.....
어린 시절의 약간은 씁쓸한 이야기로군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자의 비애입니다.. (-.-;)
#2. 어릴적 꿈
호련의 어릴적 꿈은 만화가와 작가였습니다.
특히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고2때 진지하게 대학을 가지 말고 그림만 그리면 안될까 고민했답니다. ㅋㅋ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어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메일에 하겠습니다. ^^
#3.
그 당시 몸 속에 케찹이 흐르는 줄 알았던 어린
호련은...
물론 지금은 이제 다른 피가 흐르긴 하지만..
아직도 식품을 살 때 O사의 제품이 아닌 다른 회사 것을 사면..
어쩐지 죄책감이 들곤 합니다. 맙소사...역시 세뇌는 무서워요.......정말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