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
그는 자신의 아래를 본다. 더운 김이 나고 있다. 하얗고 투명하다. 온갖 빛은 그를 때린다. 그는 더운 김에 서려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이건가. 이건가. 이것이 나인가."
그는 공포에 질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찾았다.
아니다! 그의 눈은 희뿌연하다.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몸은 흠뻑 젖었다.
순식간에,
순식간에 그의 머릿 속에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듯이...
그렇게 그는 자기 자신을 회상했다.
#2. 어둠
어두운 방. 그는 잠에서 깼다.
차갑다.
그는 자신이 차갑다고 느꼈다.
일어나기 힘들다.
전신은 마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머리도 눈도 팔도 다리도 입도 귀도 목도 허리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어두운 방 안에 누워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누워있을 뿐이었다.
건조한 공기가 가득했다.
그는 가만히 누워있었기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이 좀 딱딱하고 뻣뻣하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차갑다는 것.
컴컴하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그 곳에서
그는 작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 목소리는 가늘고 마치 종이가 바스락 대는 것 같이 건조해서 그가 누워있는 방 안에 울려퍼지긴 커녕 자신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눈에 펼쳐지는 온갖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나는 무엇이지..'라고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머릿 속은 멍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이 그는 그 어둠 안에서 시작을 맞았다.
그는 어둠을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아무런 목소리의 울림도 없었다.
그는 어둠 그 자체였다. 그는 어둠 전부였다.
그 자신과 세상은 온통 어둠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어둠이 되었고 세상은 어둡기만 했기에..
때문에 그는 어둠처럼 단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가만히 있을 생각이었다.
그녀만 아니었으면....
그가 누군가의 부시럭대는 소리를 들은 것은 그가 어둠에 익숙해져 녹아든 그 한참 후의 일이었다.
때문에 적잖게 놀라고 말았다.
#3. 소리.
그는 깜짝 놀랐다.
당연한 것이 그 어두운 그 곳에서는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 믿었었기 때문이었고, 또 세상에 있는 것이 어두움뿐이라고 느꼈기에 그러했다.
부시럭대는 소리는 아주 가까운데에서 들렸다.
그는 자신이 아닌 것이 내는 소리를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잠을 자고 있던 그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부시럭대는 소리와 함께 옅고 가늘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았던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불쾌감을 느꼈다.
부시럭 소리가 들리기 전에 자신은 세상 그 자체였고, 따라서 세상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부시럭대는 존재도 그의 옆에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정복의 상실을 느꼈고, 그것은 적잖은 실망감과 함께 속았다는 모욕감을 안겨 주었다.
그는 동요를 느꼈고,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심장이 오그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혼자 있다고 믿었던 어둠 속에서 갑자기 느낀 누군가의 존재. 그것도 바로 자신의 근처에서 존재의 증명은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자기 공간이 침투된 것에, 그것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의 어둠에 숨어들었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
그는 무서웠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가만히 누워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차츰 작아지더니 결국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또 알고 있었다.
'소리를 내고 있는 그것은 바로 내 곁에 있다. 아직도..'
그는 처음처럼 누워서 그 존재를 느껴보려고 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를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알 수 없었다.
'왜 그 동안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궁금증은 마구마구 부풀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누구야. 거기 있는 이는...."
처음으로 그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에 깜짝 놀란 그는, 처음 나온 큰 소리와는 달리 마지막에 '이는..'이라고 말할 때는 자신도 듣기 힘들정도로 작게, 거의 숨소리 비슷하게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머릿 속이 어지러워지고 가슴은 졸아만 갔다.
무언가가 자기를 덥치지 않을까 불안감이 확 엄습했다.
그는 처음으로 어둠이 싫었다.
그리고 차츰 공포에서 벗어날 즈음에야 겨우 그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앗, 여기는?..어디지..나는..나는... "
그렇게 그녀는 말을 꺼냈다.
#4. 침묵
목소리는 가늘었다. 그는 그녀의 존재를 확인했다.
더듬더듬 그녀를 만지려 했지만,
어둠은 그것을 저지했다.
"당신은 누구요."라고 그가 물었다.
"나요? 글쎄요...이곳은 정말 어둡군요.." 그녀가 작게 소리내어 말했다.
분명 그들은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아..정말 그래..미치도록 어둡군...나도 모르겠군..대체 여긴 어디지..이렇게 어두워서야.."
그의 머릿 속은 눈 앞에 펼쳐진 어둠처럼 새까맣게 칠해져 갔다.
그도 그녀도, 자신이 누군지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둘은 많은 대화를 했지만
결말은 알 수 없다는 것이어서 결국 지쳐 침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은 또 흘렀다.
그는 멍해져 있다가 깼다. 사실 자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워낙 어둠뿐이라 머릿 속도 멍해서 구별조차 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적막함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는 그녀에게 또 말을 걸었다.
" 이 곳은 정말 조용하군. 그리고 정말 어둡군요. "
" 네, 그래요."
그녀는 대답했지만, 그는 다음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또 다시 침묵했다.
그녀도 침묵했다.
한참 후 그는 다시 말했다.
"나는 어두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난 밝았던 걸 언제 봤는지도 기억에 나지 않는걸요."
"..나도 그렇군..대체 여긴 어디지. "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역시 암흑천지인지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앗다.
"이리 가까이 올래요? 심심하군요."
그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데.. 미안해요. 그냥 이곳에 있겠어요. "
"언제부터 여기에 계속 있었는지 모르겠군. 이런,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그냥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섞여 있는 것 같은데..알 수가 없단말야..."
"그렇군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그녀 역시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어둠 안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분명 많은 경험을 했어요. 글쎄.. 나는 넓은 들판에도 있었고, 산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알 수가 없군요..분명 그 모든게 내가 아닌데..바다에도 있었어요. 하지만..그 모든 경험이 진실인지 알 수 없군."
그는 흥분하며 말했다.
"그럼 하나하나 말해주지 않겠어? 나는 너무 이곳이 지루한데.."
그녀는 머리를 찌뿌렸다. 각기 다른 광경들이 눈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복잡하게 얽혀버렸다.
"몰라요. 미안해요. 머리가 아프군요."
그는 재차 졸랐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신경질을 부렸고, 그래서 그들은 침묵했다.
그렇게 그들은 어둠 안으로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시간을 흘렀고, 남자는 다시 참을 수 없었다.
#.5 지진
"이봐요. 당신은 화가 나지 않소!!?"
그는 갑자기 흥분했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곧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그녀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화가나요? 아니요."
그는 말했다.
"나는 화가 나오. 나는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따분하오. 그리고 궁금하단 말이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이러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난 참을 수 없어. 내가 과연 무엇을 하기위해 여기 있는지."
그는 갑자기 말을 쏟아냈다. 마치, 이 적막과 어둠에 항변하듯, 자신의 머릿속에 줄곧 떠돌아 다니던 생각들을 모조리 밷어냈다. 그는 신이났고 조금 더 떠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말을 좀 해봐요..."
결국 그가 지친듯이 말을 더 걸었다.
역시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글쎄요. 아무래도 좋으니 나는 물이 먹고싶은데요..."
물, 그 단어에 그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여러 말을 했지만 깨끗히 무시당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격분과 많은 말을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에게서 허탈함을, 그리고 무언가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공포를 느꼈다.
물, 그는 그 단어에 왠지 숨이 막히었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꺄악!!!"
콰르릉!! 서걱서걱!!! 이 괴상한 소리와 함께 그와 그녀는 엄청난 진동을 느꼈다. 그들의 몸은 마구잡이로 뒤집혔다. 그들의 소음과 함께 알 수없는 굉음과 함께 그들은 위 아래로 흔들리고, 좌우로 뒤집혔다.
그는 엄청난 멀미를 느꼈다. 그리고 절규했다.
"대체 이게 뭐야!!!"
한참 후를 진동하더니 다시 고요해졌다.
그는 겨우 자신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그의 몸에 무언가가 닿아있음을 느꼈다.
그녀였다.
"괜찮아요??"
"으음..별로요..내 몸안의 모든 것들이 뒤석여 버린 느낌이예요. 무게중심도 아랫쪽으로 쏠려버렸어요.."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했지만, 그는 단지 그녀가 다친 것 없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바로 곁에 있다는 것에 기뻤다.
"대체 이것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그의 말에 조금 피식 거렸다.
"당신은 호기심이 무척 많군요. 신기해요."
그는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침착한 그녀에게 더더욱 궁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가. 이곳이 어디인지 궁금하지도 않은 것인가.
하지만 그는 '나는 당신이 더 이상해요.'하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싶군."
그녀의 몸은 약간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
그는 계속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거지? 걱정도 불안도, 호기심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어째서 그럴 수 있는거지? 당신은 사실 무언가를 알고 있는거 아닌가?"
그녀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나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겠어.
아니, 나는..잘게 찟어졌어요. 그리고 뜨겁게 가열되어서 바짝 말랐어.
아냐, 몰라!! 모르겠어!! 나조차도 혼란스러워요. 다 알 것 같은데 전부 난데..그런데 그게 다가 아냐..
그리고 나는 마치 이런걸 많이 겪은 것 같아요.
그래요..나는 아무것도 못 느끼겠어..
나는 이런 것에 익숙해요 왠지.
그리고 나는 단지 물이 필요해요.
심한 갈증을 느끼는걸...."
그녀가 마구잡이로 내밷은 말들에 그는 무척 혼란을 느꼈다. 대체 무슨 말이야? 그는 머릿속으로 고심해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침묵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그녀의 말에서 무언가 단서를 찾기 위해.
#6.갈망
그는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사실 처음 그가 눈을 떴을 때부터 한순간도 빛이 있었던 적이 없지 않은가.
바닥의 울퉁불퉁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바로 곁에 붙은 그녀의 촉감에 혼자가 아님을 각인 시켜가며 적잖은 시간을 또 흘려보냈다.
그는 갑자기 깨달은 듯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본 적이 한번도 없군요."
짧은 침묵. 그리고 그녀는 대답했다.
"당신은..왠지 꽉 막힌 기분이예요..전혀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별로 묻고 싶지 않아요. 물어도 금세 반사되어 버릴 것 같다고 할까..
이상하겠지만 그래요. 반대로 나는 온통 투명해서 내 속을 전부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거짓말할 마음이 도통 안 들어요."
그녀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움찔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당신에게 정이 가는데.."
그는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잠자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잠시후에 힘겹게 다시 말을 꺼냈다.
" 나 사실 너무 외로워요. 그리고 솔직히 겁이나오. 이곳에..
그래도 당신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
그래서 정이 가나봐..
만약, 괜찮다면 우리가 이 곳을 나가게 된다면 함께할래요?"
그는 오랜시간(사실 그다지 오래지 않았지만 그는 굉장히 길게 느꼈다.)동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당신과 나는 섞일 수 없어요. 그걸 모르는군요."
그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 그런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곁에만 있어줘. 그걸로 충분하니까."
"........정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나는 이제 약간 알아갈 것 같은데.."
그녀는 슬픈듯이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무엇을 모르는지 말하려고 했다. 막 말을 하려 했을 때, 다시 지진이 일어났다.
와르릉!!
사각사각!!
#7. 진상
"아아아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또 다시 엎어지고 데굴데굴 구르고 위로 솟아 올랐다가 떨어졌다.
그는 뱅뱅 돌았다.
그들은 정신없이 부딧혔다.
벽에도 부딧히고 천장에도 부딧혔다.
그는 느꼈다. 이것은 지진이 아니구나!! 방 전체가 돌고 있는 것이야!!
순간적으로 지진은 갑자기 멈췄다.
그와 그녀는 이제 서로 포개어졌다.
둘 다 덜덜 떨었고, 서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다시 지진이 일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크게 방 전체가 돌고 있었다.
그와 그녀는 심지어 천장에 떨어지기까지 했다. 방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그리고 위로는 바닥도 함께 떨어져 그들을 짓눌렀다.
그들은 정말 처참하게도, 아무 동작도 못 취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방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바닥은 경사가 진채로 돌아와 있었고, 그와 그녀는 벽 끄트머리에 처박혔다.
그리고 순식간에, 천장 한쪽 끝이 열렸다.
무수한 빛이 팍하고 들어온다. 순식간에 들어온 강한 빛에 그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천장은 반만 열렸다.
그리고, 그 반 열린 천장의 틈으로
소녀의 손이 그들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그녀를 꺼내어 식탁 한쪽에 대충 휙 던졌다.
그리고 그 방 안에 뜨거운 물을 조심스레 부었다.
적지도 넘치지도 않도록, 딱 맛있는 라면을 먹을만큼의 양의 물을...
#8.혼합
그는 소녀의 손에 들려 찟어졌다. 비명을 질렀지만 그 소리는 소녀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의 불투명한 은박의 몸 안에서 새빨간 가루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그렇게 김이 풀풀나는 라면 위로 툭툭 털어졌다.
그리고 소녀는 곧바로 그녀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투명한 몸 안에는 고추, 버섯, 미역 등 각종 첨가물들이 들어있었다.
소녀는 그녀의 끝부분을 잡아 찟었고, 역시 라면 안으로 털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천장은 닫혔다.
그는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것이로군..이것이로군.."
"물이예요."
그녀가 기쁜듯이 말했다.
그는 물 안에 녹아들었다. 물은 벌건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확히 그녀들은 물을 머금고 퉁퉁 불어갔다. 아까의 비쩍마른 내용물들이 물을 머금고 통통해져갔다.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이었던 라면도 점차 그 물에 풀어지고 축 쳐지게 되었다.
3분이 조금 안 되었을때, 다시 천장이 열렸다. 이번에는 천장 전체가 날아가버렸다.
소녀는 다 익지 않은 라면발을 젓가락으로 푹푹 찔러서 헤쳐놓았다.
그와 그녀는 적당히 라면물에 흩어졌고, 그것은 맛있는 라면국물을 만들어갔다.
소녀는 후루룩 후루룩 먹었다.
라면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녀는 국물을 조금 마시고 휴지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 남은 국물은 싱크대 안, 수채구멍으로 흘려버렸다.
컵라면 용기도 쓰레기통 안에 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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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교를 일찍 간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중 추워서 덜덜 떨었습니다.
두어시간 추위에 떨다가 겨우 도서관 지하 매점 문 열 시간이 되어서 혼자 가서 따뜻한 컵라면에 몸을 식혔어요.
문득, 컵라면에 스프를 탈탈 털어 넣으면서 갑자기 소설 줄거리가 탁 떠오르더라고요.
물론 그렇다고 소설에 나오는 소녀는 전 아니고요-.-;; (전 집에서 컵라면...먹는군요--;;;)
원래 컵라면을 즐겨 먹는편이라..( 아마 1년동안 130개는 먹었을듯;;퍽퍽)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좀 더 세심하게 스프들의 내면묘사를 하고 싶었는데..
역량이 받혀주질 않아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목은 정말 성질나게 마음에 안 드네요. ㅠ.ㅠ 그런데 좋은 제목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으쓱으쓱
호련이 2005년도에 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