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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 #.2 二月
    일상 속 축복/소설 2008. 12. 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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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월이었다.
    2월 초순의 눈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사실 그 날의 날짜와 눈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까지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2월이었고, 눈이 내렸으며, 나는 그와 만났다는 것.
    우리 둘이 대면했다는 것이다.

    그날은 정오에 태호와 만났었다. 태호는 나와 같은 과 동기로 사실 나는 그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잘 아는 사이조차 아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태호는 나에게 연락하는 것이 마치 취미였는 듯 했고, 무척이나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난 그에게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거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마음의 미동도 없었기에 가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내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심한 척 행동하며 마음 속으로 그것을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 계속 문을 두드리는데 들어오던지 말던지 하는 식으로 아무런 미동도 없는 문처럼..우리 둘은 그랬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은 집 안에서 비디오폰으로 문을 두드리는 그를 보며 그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관찰하는 듯 했다.

    그는 쑥쓰럼이 많고 조심스런 아이 같은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손조차 잡지 않았다.

    태호는 그 날 무료 영화 티켓이 생겼다고 했다.
    영화는 1시 반 시작이었고, 우리는 12시에 만나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보통의 뻔한 로맨스 영화였고, 사실 태호가 예매한 영화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대체 그가 왜 이런 영화를 골랐는지, 이런 이른 시간에 예매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이제 무얼할지 한참을 서성이고 있자니 나는 너무 지루하고 진이 빠져버렸다.
    거진 한시간 동안 정처없이 걷다가 하는 수 없이 난 엄마와 급한 약속이 생긴 척 했다.
    태호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이.. 지금, 눈이 오는데?"
    "응, 그러네.."

    마침, 하필이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정처없이 걷지도 못하게 되었군.
    순식간에 갑자기 흰 물감이 세상을 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건물 처마 아래로 몸을 피했다.

    "맞고 가면 돼."

    나는 손을 뻗었고, 많은 눈들이 내 손등을 키스했다.
    그리고 그 댓가로 그들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기분이 좋았다.

    "아이..아니..그게 아니라.."

    태호는 말끝을 흐리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말끔한 그의 얼굴 표정이 참으로 난처한 기색을 띠며 살짝 붉어지더니
    이내 새파래졌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아무 말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2월이고 날씨는 많이 풀려 흰 물감들은 세상을 가리겠다는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떨어지는 족족 녹아 그들의 사체로 길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나는 이 길을 결코 저 거센 눈을 맞으며 걷고 싶지 않았고, 걸으면서 도저히 태호가 바라는대로 낭만적인 분위기가 생길 것 같지 않았다.
    태호도 그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는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얌전치 못하고 계속 부산하게 움직여댔다.
    눈이 이렇게 내리는데 그 혼자서만 비를 폭싹 맞은 것 같은 것이 그를 보며 난 마치 고양이에게 쫒겨 개울을 건너 겨우 도망쳤지만, 배가 고파져 사는 게 허탈한 생쥐인듯한 몰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나는 그렇게 바라만 보았다.
    결국 그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아!..."

    우산을 꺼내던 그가 문득 뭔가 생각난 것 같았다.
    우산을 가방에서 반만 내놓고 그가 말했다.

    "아이..내가 데려다 주면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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