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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발트 블루일상 속 축복/소설 2008. 12. 24. 00:16반응형
괜찮아요? 하고 그가 물으면, 나는 마냥 웃기만 할거야.
하늘은 좀 더 짙은 파랑이었으면 좋겠어. 햇살은 강하게 내리쬐어도 좋아.
나는 널 보고 마냥 웃을거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척
반짝반짝 빛을 내며 신나게 웃고 있을거야.
1. 어두움
길고 가늘은 하얀 손. 그가 좋아하는 손이었다. 소연은 왼손을 길게 뻗어 눈 앞에 휘저었다. 손바닥을 좌악 폈다. 뒤집었다. 예쁜 손.
손톱에는 메니큐어도 바르지 않았다. 투명하고 윤기있는 고운 피부. 누구나 한번쯤은 인형 손 같다며 칭찬하는 손이다.
소연은 준비해 둔, 늘 놓아둔 자리- 책상 위 손바닥 크기의 하얀 곰인형의 머리에 꽂힌 바늘을 오른손에 들었다. 심호홉을 했다. 묘한 흥분이 손끝까지 피어오른다. 오른손의 바늘로 신중하게 왼손의 검지 끝부분을 찔렀다. 통증이 급격하게 느껴졌지만, 잠시 숨을 멈추었을 뿐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붉은 핏방울이 열매를 맺듯 소연의 손가락 끝 위로 솟아올라 채 여물기도 전에 뚝뚝 떨어졌다. 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만해!" 하고 소리칠 그도 없었다.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왜 이러냐며 화를 낼 사람도 없었다. 행복했다.
소연은 조용히 방안에서 손가락 끝의 심한 통증의 쾌감을 즐기며 떨어지는 피상울을 보았다. 욱씬거리는 왼손 검지 끝과..흰 손가락을 타고 싱겁게 떨어진 핏자국. 아쉽게도 피는 금세 멈춘다. 소연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위로 누워버렸다.
하얀 시트와 하얀 베게 위를 뒹굴거리는 소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허기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살짝 어지러울 뿐. 이불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지금 몇시지? 지금은 오후 3시다. 하지만 아직도 소연은 잠옷 원피스를 입고 있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H가 퇴근하고 오려면... 아직도 4시간이 남았다. 4시간! 4시간이다.
커튼을 치고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린다. 잠을 자자. 잠을 자고 일어나면 H가 올 시간이 될거야.
이불의 좋은 냄새를 맡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갑자기 그의 냄새가 생각난다. 소연은 왼손 엄지로 검지를 톡톡 건드린다. 살짝 짜릿할 뿐 아프지 않는다. 아쉽게도..
괜찮아. 괜찮아.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심장이 울렁거린다.
4시간이야. 잠을 자자.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소연은 잠이 들었다.
"일부러 벗기기 쉬운 옷을 입었구나."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에 소연은 잠을 깼다. 무게가 느껴진다.
어느새 4시간이 흐르고, H가 소연의 방으로 들어왔다.
"혼자 있을 때는 문을 잠그고 있으라고 몇번을 말했어?"
옆으로 웅크리고 있는 소연의 뒤로 H가 그녀의 등을 안아 누우며 말했다.
"우웅. 잤어." 소연은 바로 누우며 대답한다. H에게 거리의 냄새가 난다.
H는 소연의 가슴을 거칠게 쥐며 말했다. 얇은 원피스 하나만 입고 있어 소연의 몸이 그대로 H의 손에 느껴졌다.
"대신 내가 몰래 들어와서 덮치긴 좋겠네."
평소처럼, 소연은 H에게 몸을 허락했다. 아니, H가 소연의 몸을 마음껫 즐기도록 내어주었다.
"대답해. 넌 나 없인 못살지?" H가 그녀의 이마를 왼손으로 누르며 물었다.
"예, 주인님" 소연은 몽롱하게 대답한다.
H는 원하는 만큼 소연을 느낀 후에 알몸의 소연을 꼬옥 안아주었다.
"밥은?" H는 묻는다.
온 몸에 힘이 빠진 소연은 아무말 않는다.
H는 소연의 땀을 닦아주고 속옷을 입히고, 티셔츠와 청치마를 입힌다.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간다.
7시 반 정도 되었지만 7월이라 아직 날이 밝다.
둘은 저녁을 먹고 다시 소연의 집 앞으로 간다. H는 소연을 다시 힘껏 안아주었다.
"전부 다 안아보고 싶은데, " H는 안타까워하면서 소연을 안아 들어본다.
"그만그만~" 배시시 웃는다.
그리고 H는 갔다.
문자가 왔다. < 혼자 있을때 문 꼭 잠가라. 안 그러면 혼난다.>
소연은 문을 잠근다.
다시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H가 가져온 거리의 냄새가 침대 시트 위에서 난다.
왼손 검지를 본다. 얼얼하지 않다. 희미하게 상처가 난 것이 보인다.
H는 왼손 검지에 상처가 있는지 보아주지 않았다.
소연은 갑자기 너무 우울해졌다.
예전에 몇번 혼낸 적이 있었다. 손을 바늘로 찔렀다고.
하지만 오늘은 그랬는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온 소연은 나른했다.
침대 위에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는 오늘 저녁을 무엇을 먹었을까.
갑자기 왼손 검지가 아프지 않다는 느낌이 슬펐다. 소연은 엉엉 울었다.
그저 검지가 아프지 않아서,
가슴이 아파서,
마음이 너무 허해서
슬퍼서 울었다.
손가락이 아프면, 배가 너무 고프면, 몸이 너무 아프면 가슴이 아픈 것이 잊혀지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소연은 이불 속에서 덜덜 떨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2. 어두움
핸드폰이 울린다. 소연은 잠에서 깼다. 퍼득 핸드폰을 든다.
엄마다.
다시 힘없이 전화를 받는다.
잘 지내느냐, 별일 없느냐, 혼자 밥 잘 챙겨 먹느냐는 일상적인 대화다.
통화를 끊고, 밤 사이 연락온 것을 확인한다.
H가 날씨가 좋으니 얼른 일어나고 밥 잘 챙겨먹으라는 문자를 보냈다.
N이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괴롭다는 문자를 보냈다.
부재중 전화는 없다.
시간은 오전11시.
소연은 누워서 생각한다.
H에게 사육당하자.
아무 생각 하지말고 이대로 계속 누워있자.
오늘도 H는 퇴근하면 집에 올거야.
나는 가만히 있자.
그래서 소연은 아무것도 안하고 12시까지 누워있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서 아무 생각도 없이 있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소연은 그렇게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서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냄새도 맡지 않는 것이 좋았다.
냄새!
그에게는 아기냄새가 났다. 어쩐지 엄마의 냄새 같기도 했다.
로션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냄새일뿐이다.
맡고싶다.
가만히 있자. 가만히 있자.
소연은 자신을 다독인다. 안돼안돼. 심장이 또 혼자 움직인다.
로보트가 되고싶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로보트가 되고싶어.
심장이 없는 로보트가 되고싶어.
그저 이성으로만 판단하는 로보트가 되고싶어.
소연은 생각한다.
H가 괴롭혀주었으면 좋겠어.
소연은 또 생각한다.
그 사람...지금 뭘 하고 있을까.
3. 어두움
H는 오지 않았다.
오후 8시다. H가 소연의 집에 오지 않은 까닭은 소연이 H의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도 여전히 잘 잠겨져 있다.
하루종일 소연은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다 친구들의 전화를 받다가 핸드폰을 만지다가 다시 이불 속에서 뒹굴거렸다.
배고프다. 집엔 아무것도 없다. 이러다가 병이 나겠어.
소연은 일어나 샤워부터 한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손에 바디워시를 덜어 거품을 낸다.
좋은 향기가 난다.
"그거 대체 무슨 냄새예요?" 횡단보도를 건너며 그가 물었다.
"소연씨에게서 나는 냄새...로션냄새인가? 비누냄새인가..." 혼자 중얼거린다.
"그 냄새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는 약간 쑥쓰러워하며 빙긋 웃었다.
샤워를 하던 소연은 혼자 빙긋 웃는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 핸드폰을 보았다.
부재중 전화는 없다.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갔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하다.
문 앞에서 반팔 화이트셔츠 차림의 H가 서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뭐해?" 소연은 묻는다.
"그냥, 집 앞에 왔어. 전화 안 받길래."
"밥이나 먹자." 소연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다.
H는 소연을 따라 걷는다.
"바보." H가 말했다.
여기서 소연의 H와 '그 사람'은 동일인물이 아니다.
H에게 사육당하듯이 살면서, 마음 속으로는 '그 사람'을 계속 그리워하는 소연의 심리상태를 그리는 글.
하지만, 내가 읽어도 '그 사람'을 H로 헷갈려할 것 같아서..-_-ㅋ 어려움이 많았고,
글 자체가 너무;; 19금이라;;; 쓰기가 힘들어서 소심해서 또 쓰다만 소설.
2007년 6월 13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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