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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감상문] 운영전
    자기계발 생활/서평 2009. 4. 2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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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전은 이번 기회에 처음 접하는 고전이었다. 처음 수업을 들으면서 그 이름을 굉장히 낯설게 느꼈었다. 한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도중에 책을 그만둘 수가 없어서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가 역에 도착해 서서 읽을 정도로 나를 이야기 속에 빠지게 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의 연이란 것은 어쩔 수 없구나하는 것이었다. 김진사와 운영은 정말 잠시 동안 서로를 보았을 뿐 서로를 이끌리게 해준 사건 없이 보고만 있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 버렸다. 나는 운영전을 읽으면서 그 둘의 사랑이 현세에서 이루어져 행복하게 잘 살게 되는 결말을 간절히 바랬으나, 운영이는 툭하면 죽겠다고 하더니 결국 죽어버렸고, 김진사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따라 죽어버렸다. 비록 다시 저승과 천상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현세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까웠다.

    또한 고전을 읽으면서 진정 새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 새를 잡아 새장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란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특히 운영이는 학문을 잘 가르치기까지 했으면서 그 소질을 가히 쓸 수 있게 해주질 않았다. 안평대군은 사랑하는 것을 소유할 줄만 알았지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다. 게다가 사랑할 때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한다. 나는 운영전에서 안평대군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가 정말 운영을 소유하길 원했다면 처음부터 김진사를 만나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혹은 운영을 그렇게 속세와 고립시켜 놓지 말았어야 했다. 지나친 억압은 당연 화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가지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다르다. 가지고 있는 것은 결국 언젠가 남에게 뺏기게 되기 마련이나, 잘 다스리는 것은 손에서 놓아두어도 손을 떠나지 않는다. 안평대군의 소유욕은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간의 욕망이 첨예하게 나타나있다. 안평대군의 궁녀 열사람을 아끼고 소유하는 마음과 김진사와 운영의 서로를 향한 마음과 무녀의 김진사에 대한 욕망과 하인 특의 재산과 운영에 대한 탐욕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결국 김진사와 운영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운영전을 읽으면서 운영과 김진사가 서로를 만나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에 나도 안달을 했고, 때때로 운영을 조롱하면서도 그녀를 돕는 나머지 아홉 사람의 우정에 감사했다. 욕망의 첨예화는 결과적으로 안평대군은 끝까지 운영을 놓아주려 하지 않으려 했고, 또한 김진사와 운영 사이의 마음이 무척 컸기 때문에 더욱 애달프고 슬프고 완성도 높게 지어질 수 있게 했다. 간절했기에 더욱 비극적으로 된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의 거의 모든 부분이 참 좋았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웠다. 특히 “시는 성정(性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숨길 수 없다.”는 말과 그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것이 그 동안 읽어보았던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없었기에 특이했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대군이 여러 문인들을 불러 10명의 궁녀가 지은 시를 공개하자, 문인들이 그 시를 풀어 시를 지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추리해 나간 부분이었다.

    “재주는 다른 시대에서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 왕조부터 지금까지 이미 6백여 년 동안 우리 나라에서 이미 시로써 이름을 날린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흐림에 빠져 우아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경쾌하고 맑으나 들떠 있는 등 대개 음률에 합당치 않거나 성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시들을 보니 풍격이 맑고 진솔하며, 생각과 뜻이 뛰어나서 속세의 태도가 조금도 없습니다. 이 시들은 반드시 깊은 궁중 사람이 속인들과 접촉하지 않은 채, 오로지 옛 사람의 시를 읽고 밤낮으로 음송하여 마음 속에서 절로 체득한 것입니다. 상세히 그 뜻을 음미해 보면, ‘바람을 맞으며 홀로 슬퍼하네’라고 한 것은 님을 그리워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 ‘외로운 대나무 홀로 푸른빛을 간직하였네’라고 한 것은 정절을 지킬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바람이 불어 이리저리 흩날리니“라고 한 것은 자신을 보존하기 어려운 태도가 담겨 있고. ’그윽이 초나라 임금을 생각하네‘라고 한 것은 임금을 향한 정성이 담겨 있으며, ’이슬방울 되어 연잎에 머물렀네‘와 ’서쪽 묏부리와 앞 시내에 걸쳐 있네‘라고 한 것은 천상의 신선이 아니면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격조에는 비록 높고 낮음이 있으나, 덕과 의로써 교화하려는 기상은 대체로 같습니다. 나리의 궁중에서 이 10명의 선인을 기르고 있음이 틀림없으니, 원컨대 조금도 속이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시 한수 한수를 그냥 넘겨짚지 않고 시 안에서 많은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굉장하게 생각되고 재미있었다. 시란 것은 그 한수 한수는 짧으나 그 안의 깊은 시구로 하여금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이 작품을 지을 때에는 이러한 것들도 다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경이롭게 생각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찾기 힘들었다. 조금 의문이 갔던 부분은 안평대군이 처음 10명의 궁녀들을 뽑을 때 나이가 어리고 어여쁜 자를 10명 뽑아서 가르쳤다고 했는데, 그 부분을 보면서 안평대군은 “하늘이 재주를 내릴 때 어찌 유독 남자에게만 많이 내리고, 여자에게는 적게 내렸겠느냐?”라고 했으면서 공평하지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안평대군이 만약 궁녀들을 잘 가르치고 싶었으면 아무리 궁녀들이 재주가 엇비슷해보여도 조금이라도 총명한 사람을 뽑았을 테고, 혹은 정말 공평함을 생각했다면 조금이나마 미모가 안 되는 자 총명하게 만들자 라고 생각했을 텐데, 역시 안평대군은 위인은 못 된다라고 생각했다.

    또한 마지막에 김생이 부처님께 빌면서 운영이 다시 살아나 자신의 배필이 되게 해주면 운영은 손가락을 다 자르고 비구니가 되고 자신은 중이 되겠다고 했다.

    세존이시여! 운영이 다시 살아나 제 배필이 되게 해주시어, 운영과 저로 하여금 후세에서는 이러한 원통함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노비 특을 죽이고 쇠로 된 칼을 씌워 지옥에 가두십시오. 세존이시여! 진실로 이 같은 소원을 들어주시면 운영은 비구니가 되어 열 손가락을 사르고 20층 금탑을 지을 것이며, 저는 중이 되어 오계를 지키고 큰 사찰 3개를 창건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런데 중과 비구니는 결혼을 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왜 자신은 손가락을 자르지 않고 애꿎은 운영의 손가락을 자신이 자르겠다고 말하는지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도 그래서 부처님이 운영을 다시 살리지 않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어째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중간 중간 시로써 말하고 시를 통해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다. 읽기 전에는 낯선 고전이기에 분명 지루하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의외로 흡입력이 강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등장인물의 특성도 연약한 운영,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김생, 타락한 무녀 등 잘 나타나 있었다. 앞으로 읽게 될 다른 고전들도 부디 운영전만큼 흥미가 있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또한 이런 작품성 있는 고전들이 앞으로 널리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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