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좋아하세요? 사진전을 좋아하시나요? 오늘은 특별한 사진전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제 지인의 부탁으로 이 사진전을 소개하게 되었는데요.
로드리고님과 무척 친한 사이라고 사진전을 꼭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ㅎ.ㅎ 저도 시간 나면 한번 가볼까 합니다.
로드리고 작가노트
온몸으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의 의미
중동의 ‘시리아’에서 내 망명/여행은 시작되었다. 다른 말로, 무정부의 해방공간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도 나를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내가 짊어졌던 모든 의무도 효력 정지 상태이다. 편리라는 미명으로 생겨났지만 족쇄가 되어버린 휴대폰도 들고 다닐 필요 없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출옥수가 느끼는 해방감이 이럴 것이다. 삶이 이렇게 가벼웠던 적이 있었던가? 모든 선택은 내 자의로 이루어지고 책임도 내가 진다. 환희도 순전히 내 것이요, 환멸이 있다면 내 탓이다. 여행은 혈연, 지연, 소속, 출신 등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나를 ‘나’ 자체로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완전한 우주였던 것이다.
내가 어지간히도 우둔해서 그렇겠지만, 아시아 전역을 여행하고 나서야 인구 밀도 세계 3위라는 한국의 비좁은 현실이 감지된다. 한국은 구성원 모두 편히 숨 쉬고 살기엔 너무 작아서 공기가 부족하다.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내 공기가 부족하니 남의 공기를 뺏어 간다. 때문에 한국인들이 ‘여유’를 회복하기 위해선 한국 바깥의 공기를 마시는 여행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반도 지형이지만 북쪽으로 국경이 막혀 있어 사실상 섬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지정학정 상황이 한국을 고립시키면서 획일주의가 판을 치고 관용에 인색한 사회로 만든다. 반면 여행을 통해서 만났던 아시아 대륙은 여러 민족, 문화, 종교, 언어, 지형, 기후를 아우르는 다양성의 땅이었다. 그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걸어서 국경을 넘을 때였다. 배낭을 메고 온몸으로 국경을 넘고 나면 다른 민족이 다른 언어로 나를 반겨준다. ‘한 곳’에서 불과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졌다. 반대로 분명 국경이 나뉘어져 있는데도 이쪽과 저쪽에서 같은 민족이 같은 언어를 쓰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말을 쓰거나 다르게 생겼으면 그 즉시 타자가 되어버리는, 단일민족 신화에 빠져있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힘든 귀한 경험이었다.
지도에는 국경선이 그어져 있지만 실제로 땅에 금이 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근대적 관념이 만든 배타적인 경계가 국경인 것이다. 때문에 그것을 온몸으로 넘나들며 경계를 지우는 것은 나와 남의 차이를 지우는 위대한 퍼포먼스였다. 짜릿하기까지 한 그 순간이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길 위에 머물게 했던 것이며 그것은 곧, 새 시대를 살아갈 미덕을 체화하는 것이었다.
여행은 지상에서 가장 탁월한 학교
여행은 지상에서 가장 탁월한 학교였다. 길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선생님이었고 길에서 본 모든 풍경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영감을 주었다. 여행은 매일 매일 나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줬고 새로운 사유를 촉구했었다. 21세기라는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믿어 지지 않을 정도로 아시아인들의 삶은 제각각이었다. 내가 기본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사치이기도 했으며, 그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도 내게 소원한 것이 많았다.
우월한 인간, 저열한 인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닐 텐데, 성실하게 살기는 매한가진데 민중의 삶은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왜?’라고 의문부호를 찍어야 했던 여행의 순간들. 나는 ‘체 게바라’와 ‘한비야’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체 게바라는 청년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라틴 아메리카를 일주했었다. 그 후, 그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지만 쿠바로 건너가 혁명의 주역이 되었고,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볼리비아 혁명에 투신했다가 처형당한다. 그리고 한비야는 7년간 세계 여행을 한 후 국제구호단체의 긴급구호팀장을 맡고 있다. 체 게바라가 여행 후에 혁명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비야가 여행 후에 긴급구호팀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너무나도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결국 인류의 한 줌 빛이 되기를 자처한 두 사람을 배출한 것은 여행학교였다.
나는 여행학교의 두 선배만큼 우등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소심한 나는 두 선배처럼 살아갈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여행학교는 학업부진아인 나에게도 ‘삶에 대한 용기’를 두둑하게 선물해 줬으니, 이제 내가 받은 것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야겠다. 한 없이 미약하지만 내 사진들이 품은 ‘삶에 대한 용기’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 닿기를 소망하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첫 개인전을 가진다.
갤러리카페 마다가스카르는 예전에 명강사 초청 세미나를 들으러 가다가 곁눈질로 보기만 한 카페인데요.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어느날 제 지인이 저랑 가고 싶은 카페가 있다면서 이곳을 이야기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아직 못가봤네요 ㅠ) 심지어 카페에 가보기도 전에 소개를 먼저 하는(!) 이런 기묘한 인연이라니요. ㅋㅋ
갤러리 마다가스카르에서 사진과 함께 여행의 설렘을 느껴보실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