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을 읽고 지친 몸을 다독여 감상문을 쓸제 열심히 미친듯이 쓰다가 그만 컴퓨터가 멈추어 다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심중에서 화가 솟아오르는 것이 나는 속세의 사람인지라 이런 것을 참을 수 없노라. 내가 구운몽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바는 양소유가 세상 일을 다 겪고 속세가 덧없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하지만 난 그런 양소유가 부럽기 그지 없었다는 것이다. 양소유는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얻고 싶은 것 다 얻고 자신이 굳이 유혹하지 않았는데도 경국지색의 미녀들이 앞다투어 그의 배필이 되고자 하니, 원하는 것 다 이루었는데 그럼에도 속세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았다. 어차피 난 용렬한 사람인지라 구운몽을 읽고 느낀 것은 나도 양소유 같이 되어서 속세가 좀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구운몽은 고등학교때 교과서에서 그 결말부분을 접해보았고, 그 줄거리도 열심히 배웠으며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래서 사실 읽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오히려 줄거리는 너무 간략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소유가 8선녀를 만나는 각기의 과정도 특색있었고 8명의 부인들의 성격도 모두 달랐으며 개성이 뚜렷해 인물들이 생동감이 넘쳤다. 그리고 단지 그녀들이 양소유에게 순종적이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양소유를 속이기도 하고 그를 놀리기도 하며 오히려 가끔 그를 아기처럼 대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리고 한결같이 다들 친하며 양소유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조금은 현실성 없게도 느껴졌지만 보기에 참 좋았다. 그리고 미색만 갖춘 것이 아니라 모두들 지혜롭고 영특하며 심지어 술법까지 익히니 놀랍고 대단하다 느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러하다.
"양랑께서는 어찌 이리 늦게야 오십니까?"
양생이 그 여자를 보니 몸에는 홍초의를 입었고 머리엔 비취 비녀를 꽂았으며 허리엔 흰 옥으로 된 패물을 찼는데 선연하고 표묘하여 참으로 신선 같아 허둥지둥 답례하여 말하였따.
"소생은 티끌 세상의 속된 사람으로 월하의 기약이 없었는데 선녀께서 늦게 옴을 꾸짖음은 어찌 된 연고입니까?"
그 미인이 말하였다.
양생을 인도하여 정자를 올라 자리를 나누어 낮았다. 여동이 술을 드리니 미인이 탄식하여 말하였다.
"옛 일을 말씀드리려 하니 마음이 슬퍼집니다. 첩은 본래 요지왕모의 시녀요, 낭군은 곧 상천선자셨습니다. 그런데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왕모에 조회하다가 우연히 첩을 만나 신선의 과일을 가지고 서로 희롱하자 왕모께서 노하시어 상제께 아뢰었습니다. 그래서 낭군은 인간 세상에 떨어지고 첩은 산중에 귀양와 이제 이미 기한이 되어서 장차 요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반드시 낭군의 모습을 뵙고 정을 나누고 싶어 선관에게 빌어 하루의 기한을 미루었답니다. 첩은 진실로 낭군이 오늘 오실 줄을 알았습니다."
말이 청산유수로다. 양소유는 춘랑이 거짓말을 하는 지를 눈치 못채고 그녀에게 빠져서 홀딱 속아 넘어간다. 이야마로 춘랑이 마치 선녀와 같은 외모를 지녔다는 것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거니와, 정경패의 지고는 못 사는 성격도 잘 나타나 있고 춘랑의 정소저에 대한 충성스러움도 잘 알 수 있던 부분이었다. 게다가 완벽한 듯 보이는 양소유가 처음으로 완전 속아버리는 부분이라 은근 좋았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양소유는 훗날 정경패의 연극에 또 한번 속는다. 이는 8선녀의 지혜로움이 결코 양소유에게 뒤지지 않는 것이라 느껴 더욱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러하다.
세번 째 날은 진숙인의 방으로 갔다. 비단 장막을 늘어뜨리고 은촛대를 내올 적에 숙인이 문득 눈물을 떨구자 승상이 놀라 물었다.
"숙인이 즐거운 날에 슬퍼하니, 혹시 마음 속에 숨긴 것이 있는 게 아니오?"
숙인이 말하였다.
"승상께서 천첩을 알아보지 못하시니 잊으신 것을 알겠습니다."
승상이 문득 깨달아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경은 화주의 진낭자가 아니시오?"
채봉이 어느새 흐느끼는 소리를 내었다. 승상이 주머니 속에서 <양류사>를 꺼내 놓으니, 채봉도 또한 양생의 시를 내어 놓았다. 두 사람이 비통하여 서로 오랫동안 쳐다 보기만 하였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너무 기분이 좋고 이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양소유는 숱한 미인들을 만나면서도 첫사랑이던 진숙인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죽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늘 양류사를 몸에 지니고 다니다니 (비록 다른 여자와 합방하는 날에도 그랬지만) 나는 이 둘이 천생연분이요. 영원한 사랑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진채봉이 그의 부인이 못 되고 첩이 된 것은 좀 못 마땅하다. 물론 못 이루어 질 뻔한 사랑이 우여곡절 끝에 잘 되었다고는 하지만, 처음 그녀를 배필로 삼기로 했었는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결국 첩이 되다니 이 소설 중에서 가장 안 된이가 진채봉이리라. 역시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있는다고 양소유는 몇년이 지나도 몇명을 만나도 진채봉이 늘 가슴에 박혀있었나보다. 비록 중간에 그녀를 못 알아차리는 우를 범하기는 했지만, 그는 그녀가 죽은 줄로만 생각하고 또한 진채봉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 (대체 왜 가렸을까)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이러하다.
공주가 벌주를 마시지 않으면 취객이 화를 풀지 않게 생겼기에 시녀를 시켜 난양공주에게 벌잔을 내렸다. 받아서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승상이 의심을 내어 잔을 빼앗아 마시려고 하였다. 난양공주가 급히 땅에 떨어뜨렸으나 잔밑에 남은 술찌꺼기가 있어 승상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니 사탕물이었다.
나는 8명의 부인이 양소유를 진실로 공경하고 섬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부분을 보고는 놀랐다. 승상이 술을 마시도록 권하는데 이렇게 그를 속이는 잔꾀를 부리다니 난양공주의 그녀다운 도도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듯 하면서도 잔머리를 열심히 부리는 그녀가 딱히 예뻐보이지는 않았다. 승상이 의심하여 잔을 빼앗으려 하는데 일부러 떨어뜨리기까지 하다니.. 일국의 공주가 저렇게 의연하지가 못하고 끝까지 남편을 기만하려 들다니 그녀에게 정이 딱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구운몽은 무척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척 교훈적인 소설이었다. 다만 나는 구운몽의 교훈이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양소유처럼 속세의 덧없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나도 일단 양소유처럼 되고 나서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는 심상이 돋우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남자들이 그에게 심히 질투를 느끼지 않았을까. 난 오히려 이 소설을 읽고 더욱 더 속세에 집착하게 되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졌을 때야 속세에서 초연해질 수 있노라 하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8명의 부인들이 모두 승상을 공경하며 즐거이 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 되었다. 아마 그녀들이 전생에 선녀였기에 그랬나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사실 내가 8명의 부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양소유에게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을까. 스스로 첩이 되고자 하며 그에게 아내를 얻기를 권하는 계섬월의 큰 뜻을 용렬한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속세의 사람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