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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감상문] 한중록
    자기계발 생활/서평 2009. 4. 23.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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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록은 너무 섬뜩했다. 그리고 이것이 궁중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그리고 실제 있었던 일을 쓴 것이라는 게 더욱 더 무섭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혜경궁 홍씨의 삶이 너무도 불행하게 느껴졌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러하다.

    그날 경모궁을 뜰에 세우시고 술 먹은 일을 엄문하시니 진실로 잡수신 일이 없건마는 너무 두려워서 감히 변명을 못하는 성품이시라. 하도 강박하게 물으시니 하는 수 없어,
    "먹었나이다."
    하시매,
    "누가 주더냐?"
    하시니 댈 데가 없어,
    "밖의 소주방 큰 나인 희정이가 주옵더이다."
    하시니, 영묘께서 두드리시며,
    "네 이 금주하는 때에 술을 먹어 광패히 구느냐?"
    하시고 엄책하셨다. 이때 보모 최상궁이 아뢰기를,
    "술 잡수셨다는 말씀은 억울하니 술 냄새가 나는가 맡아 보소서."
    하니, 그 상궁 아뢴 뜻은 술이 들어온 일 없고 잡수신 바 없으니 원통하여 참을 우 없어서 아뢰었던 것이나 경무궁께서 상전에서 최상궁을 꾸중하셨다.

    이 장면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고, 또한 그들의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을 잘 나타낸 부분이었다. 영조의 말씀에 사실조차 말하지 못하고 기가 죽어 자신이 술을 마셨노라 거짓말을 하는 사도세자의 소심함과 무기력함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오히려 사도세자의 누명을 벗겨주려 주위에서 사실을 고하나 사도세자가 더러 꾸짓는 장면에서 나는 사도세자가 너무 불쌍하고, 또한 막되먹은 사람은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조는 자신이 추측한 바를 놓고 사도세자를 몰아세워 후에 불이 난 것까지 온통 사도세자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호통친다. 영조와 사도세자가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간에 믿음도 없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또한 사도세자가 살인을 하고 나쁜 짓을 행하는 이유 또한 이해가 되었다. 아들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 영조는 별로 좋지 못한 아버지였다고 생각이 된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이러하다.

    거기 있는 것이 부질없게 생각되어 세손 계신 데로 와서 서로 붙잡고 어찌할 줄 몰랐더니 신시(오후 3시와 5시 사이)전후 쯤 내관이 들어와서 밖 소주방에 있는 쌀 담는 궤를 내라 하였다. 이것이 어찌된 말인지 황황하여 내지 못하고 세손궁이 망극한 일이 있는 줄 알고 문정 앞에 들어가,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
    하니, 대조께서.
    "나가라!"
    하고 엄히 호령하시니 세손이 나와 완자 재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때 정경이야 고금천지간에 없으니 세손을 내어 보내고 천지가 개벽하고 일월이 어두웠으니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무를 마음이 있으리요.
    -중략-
    당신의 용력과 장기로 궤에 들어가라 하신을 아무쪼록 들어가지 마실 것이지 왜 필경 들어가셨는가.

    나는 이 장면이 너무 끔찍하게 여겨졌다. 아버지를 죽이는 할아버지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손자와 남편이 죽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 원망 못하고 자기도 목숨을 끊으려는 혜경궁 홍씨의 모습까지..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좀 더 혜경궁 홍씨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짧은 생각이지만 말이다. 또한 나는 그녀가 영조를 원망하기 보다는 대체 왜 궤속에 필경 들어가셨는가 하는 부분이 좀 거슬렸다. 물론 궁중의 몸으로 함부로 글을 쓸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대체 어째서 하필이면 쌀 담는 궤였는지 의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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