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습유는 정말 특이한 소설이었다. 여태껏 읽었던 소설들과는 좀 다르게 스케일이 너무 커서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향랑의 슬픈 이야기로겠거니 여겼는데 갑자기 천군과 마군이 싸움을 하지 않나 김유신 공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인간의 음양의 조화와 오행 등등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등, 이야기가 굉장히 다채로웠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처음부터 천군과 마군의 이야기를 살짝 등장시켜주었더랬으면 좋았을텐데 향랑의 이야기만 나오다가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져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러하다
첩은 듣건대, 남자는 천하에 능력을 나타내려는 뜻이 있고 여자는 짜던 베를 끊어 남편이 학문에 힘쓰게 만드는 지혜가 있는 까닭에 집안의 도가 막히지 않고 영예로운 이름이 끝없다 합니다. 저는 부인이 색을 스스로 묶어두고 곧음과 믿음으로 몸가짐을 굳게 지닌다는 말은 들었짐나, 남편으로 하여금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도록 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시경'에 '농담하여 웃고 즐거워 하지만, 마음으로 슬퍼하노라'하였고, 또 '가지도 오지도 않는지라, 매우 그리워한다'하였습니다. 잠자리의 일로 말한다면, 밤에 한다는 것은 알지만 낮에 한다는 것은 모릅니다.
이 부분은 향랑이 남편이 잠자리를 함께하기를 원하자 그에게 한 말이다. 그 외 그녀가 그 동안 얹혔던 이야기들을 더 하는데, 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멋져보였다. 남편이 집에 들어와 술에 취해서 책상을 걷어차고 하는 말인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럼에도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너무 논리적이고 매우 탄탄하여 왠지 통쾌했다. 아무리 갖은 폭력에도 당당히 맞서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은 이러하다.
상제가 격문을 날리자 천지의 성인과 선가, 불가,유가, 묵가가 한데 모여 변론을 시작했다. 다시 한창 다툼이 일어난 끝에 장자의 의견을 따라 공자에게 물어서 결정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어째서 상제가 공자에게 옳고 그름을 묻는지 의문이 갔다. 천상인은 인간보다 더 위의 존재가 아닌 것인가? 어째서 상제씩이나 되어서 공자의 의견을 묻는 것인지 조금 아이러니했다. 잘 이해되지 않았다.
또 이 부분도 그랬다.
몇 달 후에 아찬이 병에 들어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장면이 보였다. 눈을 뜨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찬은 일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집의 일을 처리해둔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죽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너무 섬뜩했다. 부인이 아찬에게 함께 가자고 옷을 잡아당긴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무섭지 않은가. 먼저 향랑이 자신은 이제 인연이 다 했다고 말하며 편하게 죽은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더 그랬다. 내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해를 못 하는 것인가. 그냥 꿈 속에서 나와서 웃는 모습만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꼭 향랑이 와서 데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