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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감상문] 하생기우전
    자기계발 생활/서평 2009. 4. 23.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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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몇 안 되는 작품을 접했으나 그동안의 고전소설을 읽고 알 수 있었던 점이라면, 남녀가 첫눈에 만나 운우의 정을 나누고 즐겁게 지내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거나 혹은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내용이 주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째서 남주인공들의 이름은 모두 생(生)자인지 의문이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다른 작품들도 양생 김생 하생 이생 당생..등 모두 생자가 있다. 게다가 여태까지 보았던 남주인공들은 절대 여주인공보다 먼저 안 죽는다!! 늘 여주인공이 죽거나 귀신이어서 끙끙대지 않는가. 옛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여 잘 간직되어 이제까지 전해내려오게 된 걸까? 이런 것이 무척 궁금해서 몸살나게 만들었다.

    하생기우전은 여타의 소설들에 비해 결말도 좋고 그 둘 사이에 심각하다할 위기가 없었다. 위기라 하면 여인의 부모가 잠깐 둘의 결혼을 반대한 것이었는데, 사실 어차피 자식 이기는 부모 없지 않은가. 영영전처럼 가볍지도 않으면서도 읽으면서 속 시원하게 하는 맛이 있었다. 다른 작품들은 다시는 못 만날 인연이 되어 애끓곤 하는데 하생기우전에서는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 결혼하여 살게된다. 바로 며칠 전 금오신화를 읽고 속타던 나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제목처럼 아주 기이한 이야기로 구해준 것이다. 전체적 구조는 달라도 이렇듯 약간씩 다른 점들이 소설마다 찾아 읽는 재미를 쏙쏙 주는 것 같다. 아마 옛 선인들이 소설을 읽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자신의 욕망에 맞게 새롭게 각색해서 써온 것이 아닐까싶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러하다.

    시녀가 얼마 뒤 주인 낭자의 명으로 와서 문안하기를,
    "제가 사는 이곳은 외지고 누추한 곳입니다. 손님은 어떻게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였다. 하생은 방안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여인의 마음을 떠보려고 답하기를,
    "저는 어릴 적부터 재명을 자부하여...<중략>...오늘 점쟁이의 말을 듣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며,점쟁이가 한 말까지 아울러 이야기해주었다. 시녀가 그 말을 듣고 갔다가, 웃으며 와서 다시 낭자의 말을 전하기를,
    "저도 점장이의 말을 믿고 액땜을 하려고 이곳에 오게 되었으니,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방이 누추하기는 하나 하룻밤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하새은 그 말이 더욱 이상하여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즉시 책상 위의 꽃무늬 종이에다 단편 두 수를 지어 시녀 편에 부쳐보내며 말하기를,
    "묵어갈 방을 주신 것도 너무나 고마운데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그 시에,

    맑은 한 줄기 은하수 그림자 반쯤 비낀 밤
    수 놓은 주렴 겹으로 내리고 구름 병풍으로 가리었네
    직녀의 베틀 곁을 지나는 걸 그대 혐의하지 마오
    군평이 객성을 알아본 게 오히려 이상스럽지
    향 연기는 줄기줄기 구름은 갓 흩어지고
    옥 같은 절개 높고 높아 봉황도 중매를 서지 않네
    애 끊는 하룻밤 외로운 베갯머리 꿈자리여
    가련해라 양대에 갈 길이 없구나

    하였다. 시녀가 가지고 갔는데, ㅇ러마 뒤 다시 꽃무늬 종이에 적힌 편지를 가지고 와서 하생앞에 내놓았다. 바로 주인 낭자의 답장이었다. 시에 이르기를,

    지난 밤 나른히 원앙침 베고 누워
    꿈에 꽃을 꺾어 머리 가득 꽂았었네
    나 혼자의 속 마음을 시녀에게 이야기하고
    화장 거울 보려 하니 부끄럽고 부끄럽네
    달빛 드는 격자 창문 밤에도 잠그지 않고
    옥 새장 속 앵무새는 이제 막 잠들었네
    마음 스치며 지는 낙엽 옥 구르는 소리를 내고
    문득 무정한 듯하다가도 다시 유정하여라

    정숙한 여인은 그 여인의 몸으로서 낯선 사내를 마주하기 힘들었으리라. 외롭고 적적한 밤에 한 사내가 자신의 집으로 들어왔으니 그 호기심과 들뜨는 마음을 어찌 참겠는가. 차마 자신은 직접 나서서 보지 못하고 시녀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리는 그들의 모습이 애틋했다. 아마도 시녀는 시의 내용을 알 지 못하고 바삐 전하러 다니었을게다. 다른 소설에서도 시로써 서로를 유혹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이렇게 아닌 척 하고 시녀를 시켜서 자신의 마음과 함께 정을 나누고자 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모습이 왠지 귀여운 듯 하고 멋져보였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좀 우습겠지만 시녀 몰래 시를 써 보내면서 얼마나 짜릿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평이 객성을 알아본 게 오히려 이상스럽지'라는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문득 무정한 듯하다가도 다시 유정하여라'라는 부분도 무슨 말 뜻인지 잘 해석이 되지 않는다. 아아, 만약 하생과 그 여인이 나의 이런 궁금해하는 모습을 본다면 자기들끼리 웃지 않을까.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은 시작부분이다.

    하생이 행장을 차려 서울로 출발하면서 비복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위로 부모도 없고 아래로 처자식도 없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너희에게 이것저것 많은 말을 하겠느냐? 옛날에 종군은 비단 신표를 버렸고 상여는 기둥에다 결심을 적었으니, 약관에 모두 큰 뜻을 품은 자들이었다. 내 비록 못났으나 그 둘의 사람됨을 자못 경모하고 있다. 뒷날 출세하여 비단옷을 입고 돌아와서 너희들의 영광이 될 것이니, 가업을 잘 지켜 실추되지 않게 하길 바란다."

    하생은 비복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 보면 하생은 벼슬살이를 하여 상서령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하생은 좋은 연인을 만나 높은 벼슬에도 오르나, 처음 앞부분에 말한 것처럼 비복들에게 돌아지 않았다. 이것은 하생이 거짓말쟁이였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 영광이 되었는데 그 부분이 빠진 것인가. 첫 부분에 그렇게 시작해놓고 결국 비복들은 관심도 못 받고 하생의 훗날 사십여년 동안 행복했다는 이야기만 나온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한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하생이 혼인을 정한 날에 예전의 그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이미 자리를 옮겨 뜨고 없었다 한다.'라고 했는데, 과연 점쟁이는 어째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는지 심히 궁금하다. 점쟁이 같은 사람은 입소문에 의해 그 신령함이 전달되기 때문에 함부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장사를 하는데 좋지 않지 않은가. 물론 갑자기 사라져서 신비로운 맛은 있지만 왠지 너무 궁금하다. 혹시 천기를 누설해서 벌을 받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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