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규장전>의 최랑은 멋지다.
이생규장전에서 이생은 순진하고 소심한 소년이다. 오히려 이 소설의 주도적 인물은 여성인 최랑이다. 최랑은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무척 행동력이 있으며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최랑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되었다. 현대 여성도 그녀와 같은 이가 드믈텐데 조선시대에 이런 인물을 그렸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곳이다.
최랑은 꽃 떨기 속 깊숙히 파뭍혀 앉아 향아와 함께 꽃을 꺾어다 머리 위에 꽂으며 이생을 보고는 방긋이 미소지으며 시 몇구를 읊었다.
도리나무 얽힌 가지 꽃송이 탐스럽고
원앙새 베개 위엔 달빛도 곱구나.
이생이 뒤를 이어 읊었다.
이 다음 어쩌다가 봄소식이 샌다면
무정한 비바람에 또한 가련하리라.
최랑은 곹 얼굴을 바꾸며 말했다.
"저는 당신과 함께 끝까지 부부가 되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 하였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이 일에 대하여 마음이 태연한데 하물며 대장부의 의기로 그런 염려까지 하겠나이까? 나중에 만약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는다 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최랑은 정말 대단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머리에 꽃을 꽂는 무척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면서도, 남의 귀에 소문이 들릴까 걱정하는 이생과는 달리 자신감이 있고 또한 책임감도 강하다. 주저하는 이생과 달리 최랑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이생을 유혹하고 있다.
나는 과연 최랑이 수를 놓다가 포근함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두 수를 외운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최랑은 처음부터 이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생을 점찍어 둔 최랑은 그를 유혹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생이 지나갈 적에 그런 시를 지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자신있게 부부가 되어 행복을 누리겠다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랑은 아무 생각없이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실제 그녀는 홍건적이 자신을 범하려 할 때 자신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렸다. 이렇게 소신있는 그녀가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말할리 없다. 최랑은 자신의 점찍어둔 이생을 요즘 소위 말하는 '작업'을 건 것이다. 그것도 조선 여자의 몸으로 너무도 수월히 해냈다. 정말 똑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또한 마음에 든 것은 이생의 캐릭터와 최랑의 캐릭터의 특징이 무척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생은 정말 소심하고 결단력 없고 우유부단하고 좀 무력하다 싶을 정도의 캐릭터이다. 비록 이 소설에서 이생이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다고는 하나, 고전소설의 주인공은 원래 대부분 큰 벼슬을 하는 것이고, 여태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한심한 남자캐릭터이다. 이생은 아버지가 그에게 꾸지람을 내려서 울주로 내려보낼 때에도 반항은 커녕 최랑에게 간다는 말 한마디 못 할 정도로 잔머리도 없고 대범함도 없다. 이도령은 눈물을 질질 짜며 내가 간다고 춘향이에게 전하기라도 했지 이생은 심지어 다른이에게 전해달라는 말도 못했다. 한심하다. 게다가 홍건적이 나타났을 때도 최랑은 화가나 홍건적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이생은 겨우 도망가느라 최랑을 지키지도 못했다. 정말 한심하다.
이생은 정말 축복받은 캐릭터이다. 대단한 장점하나 없는데 최랑의 눈에 들어 그녀의 곁에서 잘 자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최랑이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자신과 반대되는 타입인 이생과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최랑이 자신들의 사랑을 거울에 빗댄 것이었다. 이생이 울주로 떠났을 때 거울이 깨졌고, 둘이 다시 만났을 때 거울이 붙을 수 있었으며, 최랑이 죽은 뒤 거울이 깨졌다. 나의 정인은 사랑은 유리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유리는 한번 깨지면 그것으로 끝이기에 정말 슬프다고 생각했었다. 깨지고 나서는 이미 산산조각이 난 것을 다시 이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생규장전'에서는 깨진 거울은 붙기도 하고 다시 갈라지기도 하고, 이렇듯 긍정적으로 생각이 유동성을 띠기에 마음에 들었다. 정말 최랑 최고다.
나는 이 작퓸에서 딱히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순종적인 여인과 전혀 대조적인 최랑의 모습과 그녀의 개방적인 부모님이 멋지게 생각되었다.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조선시대의 통념을 이 작품을 통해 또 한번 깨게 되었다. 홍건적이 나타났을때 도망을 가는 이생의 모습이 눈에 선했지만, 그의 캐릭터의 특성이 너무도 잘 살아있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도 시로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것이 많은데, 이런 것들도 무척 근사하다고 생각되었다. 결국 끝에가서는 최랑이 죽음으로서 슬픈 결말을 낳게 되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