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고전문학 감상문] 홍계월전
    자기계발 생활/서평 2009. 4. 23. 02:41
    반응형

    홍계월전을 읽기 전에는 마치 홍길동과 같은 여주인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여성이 활약하는 내용을 담은 고전소설이라고 했지만, 설마 활약이라고 해보았자 얼마나 활약을 할까. 고작해야 비술을 써서 악한 무리들을 해치우는 그런 이야기겠지 라는 나의 짧은 생각을 완전히 깨버렸다. 홍계월전을 읽으면서 홍계월이 마치 옥루몽의 강남홍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교만하다고 하여 자신의 남편의 첩을 마음대로 베어버리고 악인을 끔찍하게 형벌하여 죽이는 장면에서, 남편을 위해 희생하고, 적에게 깔끔하게 대하는 강남홍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이러하다.

    부인이 대경하여 계월을 안고 통곡 왈,
    "이제는 시랑이 중도에서 도적의 모진 칼에 죽었다도."
    하며 자결코자 하니 양윤이 위로 왈
    "아직 시랑의 존망을 모르옵고 이렇듯 하시나이까?"
    부인이 그러이 여겨 진정하여 울며 계월을 양윤의 등에 업히고 남방을 향하여 가더니 십리를 다 못 가서 태산이 있거늘, 그 산중에 들어가 의지코자 하여 바비 가서 돌아보니 도적이 벌써 즉혀오거늘 양윤이 아기를 업고 한 손으로 부인의 손을 잡고 진심갈력하여 겨우 삼십리를 가매, 대강이 막히거늘 부인 망극하여 양천 통곡 왈,
    "이제 도적이 급하니 차라리 이 강수에 빠져 죽으리라."
    하고 계월을 안고 물에 뛰어들려 하니....

    조웅전의 어머니와 달리 홍계월전의 어머니는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자살하려고만 한다. 그것도 사랑하는 딸과 함께 말이다. 어떻게든 아들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조웅의 어머니와 너무 대비되어서 한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홍계월전의 등장인물들은 까딱하면 기절한다. 조금만 놀라면 기절하고 일어나 이야기 듣고 또 기절하고..이런 약한 모습들이 조금 코믹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계월이 물에 떠가며 울어 왈,
    "어머님, 이것이 어찌한 일이요. 어머님 나는 죽네. 바삐 살려주소서. 물에 떠가는 자식은 만경창파에 고기밥이 되라 하나이까. 어머님 어머님, 얼굴이나 다시 보옵시다." 하며 울음소리 점점 멀어가니 부인이 장중보옥같이 사랑하던 자식을 목전에 물에 죽는 양을 보니 정신이 어찌 온전하리오
    "계월아, 계월아, 날과 함께 죽자."
    하며 양천통곡 기절하니 주중 사람이 비록 도적이나 낙루 아니할 이 없더라.

    나는 이 부분도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적이지만 양심은 있어서 모두 눈물을 흘린다면 그러지 말고 얼른 계월을 구해주면 될텐데, 자신들이 버려놓고 슬퍼서 눈물을 흘리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있는가. 정말 병주고 약주고 하는 도적이 아닐 수 없다.

    "네 중군의 세로 교만하여 내의 행차를 보고 감히 난간에 걸터앉어 요동치 아니하고 교만이 태심하니, 네같은 년을 어찌 살려 두리오 군법을 세우리라."
    하고 무사를 호령하여 베히라 하니 무사 영을 듣고 달려들어 영춘을 잡아내어 베히니 군졸과 시비 등이 황급하여 바로 보지 못하더라

    홍계월이 다른 고전소설들의 여인들과 다른 점은 이런 것일 것이다. 옥루몽의 강남홍은 밖에서는 활달한 기남자로 통해도 안에서는 양창곡에게 한없이 순종하며 오히려 많은 첩을 두기를 권고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홍계월은 자신에게 버릇없게 군다하여 남편의 첩을 일순간에 죽여버린다. 이 부분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조선시대는 남자는 첩을 두는게 당연한 때가 아닌가. 홍계월과 보국의 사이가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던 이유가 따로 있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홍계월전이라 하여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인데도 아무리 빼어난 여자라도 남편은 첩을 두는구나 하며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것을 단칼에 베어버린게 이런 행동이라,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나는 그 때 자리에 싸여 물에 넣은 계월이로다."
    하니 맹길이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한지라, 원수 친히 내려 맹길이 상투를 잡고 모가지를 동여 배나무에 매여 달고,
    "너 같은 놈은 점점이 깎아 죽이리라."
    하고, 칼을 들어 점점이 외려놓고 배를 갈라 간을 내여 하날께 표백하고..

    나는 영화"혈의 누"를 보고 집에 들어와 이 소설을 마저 읽었는데 그래서인지 이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머리 속에 묘사되고 매우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원한이 있어도 보통 사람이라면 저렇게 하기 힘들지 않을까. 너무 엽기적이고 끔찍하다.

    좋았던 부분은 이런 것들을 빼면 전체적으로 다 좋았다. 여성이 이렇게 전쟁에 나가 맹활약을 하고 남자보다 더 월등하여 남자의 기를 팍팍 죽이는 모습이, 조선시대 여성들에게는 얼마나 즐거움을 많이 주었을까. 그리고 이런 소설이 나와 널리 읽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남존여비라고 말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인정받는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게 한다는 것이 그나마 조선시대는 꽉 막힌 사회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우스운 것은, 어째서 고전 소설에서는 남장여자들을 모든 이들이 아무도 여자인지 절대 몰라보나 하는 것이었다. 남장을 벗으면 절세가인인데 말이다. 여하튼 무척 통쾌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홍계월이 남자였으면 그저그런 뻔한 소설이었을텐데, 여성으로 나와서 더 흥미를 일으켰던 것 같다.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